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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뉴스

개미 울리는 공매도?

최근 코스닥지수가 7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주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 경계령’이 확산되고 있다. 급증하는 대차잔고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시장의 대차거래 잔고 합계는 4월 8일 기준 55조8156억원으로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대차거래 잔고 수량도 18억8658만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대차잔고는 투자자가 주식을 빌린 뒤 갚지 않은 물량을 말한다. 대체로 공매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공매도를 언급하면 개인투자자들은 발끈하기 일쑤다. 공매도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거래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주가가 내릴 것 같은 종목에 집중된다. 현 제도로는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가만 공매가 가능해 개인투자자들로선 “힘없는 개미만 당한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매도를 역으로 이용한다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쏠쏠한 재테크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 상승세가 예상될 때는 공매도 대금부터 감소하기 때문에 관련 추이를 예의 주시한다면 역발상 투자를 노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쇼트커버링 활용 가능성 높아현대건설·현대하이스코 주목공매도는 미래에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실제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하락한 가격으로 되삼으로써 그 차익을 챙기는 구조다. 예를 들어 A종목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자가 이 종목의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매도 주문을 냈을 경우, A종목 주가가 현재 10만원이라면 일단 10만원에 매도 주문이 체결된다. 며칠 후 주가가 8만원으로 떨어졌다면 투자자는 8만원에 주식을 사서 결제해주고 주당 2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공매도는 앞으로 주가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공매도는 기본적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것에 베팅하기 때문에 해당 종목의 공매도 대금이 늘고 있다면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반대라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은 저성장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탓에 어닝시즌에는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하락했다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때문에 공매도 비중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공매도 영향력이 큰 종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만 직전 실적 시즌과 비교해 공매도 비중이 줄어든 업종은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그만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투자방법은 쇼트커버링이다. 쇼트커버링이란 쉽게 말해 기관투자가가 주식을 빌려 매도(공매도)한 뒤 대차잔고를 청산하기 위해 공매도한 수량만큼 주식을 다시 사는 것을 뜻한다. 공매도가 대체로 주가 하락을 유발한다면, 거꾸로 쇼트커버링은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관투자가들이 쇼트커버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미리 선점해 둔다면 기대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최근 들어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면서 공매도 비중이 높은 일부 종목으로도 매수세가 몰리는 게 좋은 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4월 8일 기준 공매도 거래 비중이 10%를 넘는 종목은 현대상선, 두산인프라코어(종목홈), 기아차, 신한지주(종목홈), 제일모직, 현대모비스 등이다. 원래대로라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최근 한 달간 현대상선이 5% 이상 오르는 등 대부분 종목 주가가 소폭이라도 상승하거나 횡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주식시장 분위기가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9일 코스피지수는 2058.87을 기록하며 2000선에 안착할 조짐이 뚜렷하다. 증시 주변 분위기도 좋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진입 전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4월 들어 19조원을 돌파하는 등 1년 6개월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강세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공매도를 청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역으로 공매도 기업에 매수세가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목을 눈여겨봐야 할까. NH투자증권은 공매도 대기 물량인 대차잔고가 감소하고 있고, 업종지수가 바닥권에서 벗어나고 있는 업종으로 건설, 증권, IT, 철강, 미디어, 유통, 조선, 화학 등을 꼽는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4년 연말부터 나타난 환율 상승과 유가 하락 등으로 원가 감소 효과가 올 상반기에 집중되면서 1분기 기업 실적 기대감이 높아졌다. 쇼트커버링과 이익 확대 기대감이 동시에 부각될 수 있는 종목으로 현대건설과 현대하이스코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백재승 삼성증권(종목홈) 애널리스트도 “현대하이스코의 대차잔고 물량은 전체 발행주식 수의 8% 정도다. 이 물량 전체를 공매도 물량으로 볼 순 없지만 일정 부분 쇼트커버 형태의 주식 매수가 단기적으로 나타나면서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탰다.

대주거래로 개인도 공매도 가능종목·수량 제한으로 실효성은 미미개인투자자가 직접 공매도를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물론 있다. 바로 ‘대주거래’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주거래는 개인투자자가 일정한 보증금을 지불하고 주식을 증권사로부터 인도받아 미리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공매도가 주식을 한국예탁결제원이나 한국증권금융 등 대차중계 기관에서 차입해 매도한다면 대주거래는 증권사에서 빌린다는 차이가 있고,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만 증권사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 종류와 수량이 다르기 때문에 대주거래는 공매도처럼 모든 종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투자 수단으로 그리 실효성이 크지는 않다. 아울러 대주거래 시에는 매매수수료 0.1% 외에 대주매각대금 이용료가 추가적으로 부과된다. 대주에 따른 이자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만큼 높은 수익을 내야 효과가 있는 셈이다.

공매도를 직접 활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근래에는 주식대여 서비스도 틈새 재테크 수단으로 부쩍 주목받는다. 주식대여는 공매도하거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찾는 기관투자가에 일정 기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거래다. 종전에는 주식 평가액 수억원대 보유자에 대해서만 허용되는 등 문턱이 높았지만 근래 롱쇼트펀드가 급성장하면서 대부분 증권사들이 모든 투자자로 주식대여 서비스를 확대했다.

공매도 갑론을박개미 울리는 작전 vs 금융 선진화의 초석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은 개인투자자와 기관 또는 외국인투자자들 사이에 의견이 뚜렷이 갈린다.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하게 보면 공매도로 인해 자신이 산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공매도가 판을 치면 증시의 변동성이 커져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는 등 속절없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더 큰 이유는 공매도가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작전’의 한 방법으로 악용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공매도 거래는 3분의 2 이상이 외국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한국 증시가 외국 투기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매도를 활용한 작전은 단순하다. 일단 공매도를 한 뒤 시장에 근거 없는 악성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고 그 과정에서 시세차익을 얻는 식이다. 실제로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됐던 셀트리온의 경우 악성루머가 극성을 떨던 2011년 10월부터 12월까지 주가가 무려 30%나 하락했다.

지난해 공매도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개인투자자 박 모 씨는 “기관과 외국인이 공매도 물량을 쏟아낼 경우 그 피해는 관련 정보에 취약한 개인투자자가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 공매도로 인해 손실을 본 개인이 주식시장을 떠나거나 주식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는 것도 공매도의 대표적인 폐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한 자산운용사 CIO는 “악용될 여지가 없진 않지만 선물이나 옵션처럼 시장의 다양성과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롱쇼트 전략을 통한 차익거래 등 다양한 매매 전략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금융 선진화를 추구한다면 공매도는 없어서는 안 될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매도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주가 하락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공매도와 주가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통설”이라고 맞선다. 공매도 후 언젠가는 빌려온 주식을 상환해야 하고, 이는 반대로 매수세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중립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