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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의 선구자 키에르케고르

1855년 11월 11일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장례식은 같은 달 18일에 치러졌다. 군중들은 살아생전 그토록 강력하게 덴마크국교회를 비판한 자의 시신을 교회가 거두어들이는 처사에 불만을 품고 거의 폭도가 되다시피 했다. 원만하지 않은 과정 뒤에 그의 시신은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맏형이자 나중에 교회의 감독이 되는 페터가 질투와 증오심 때문에 동생의 시신이 어디 묻혔는지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은 까닭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논쟁적 책들은, 그날 저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세기 초 야스퍼스(K. Jaspers)와 하이데거(M.Heidegger) 같은 독일사상가에 의해, 그리고 발(J. Wahl)과 마르셀(G. Marcel) 같은 프랑스 사상가에 의해 발견된 후, 키에르케고르는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높이 추켜올려졌다.


루터처럼 교회에 논쟁을 거는 사람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와 키에르케고르의 기러기

당대의 교회에 맞선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출처 : Wikipedia>

임종을 앞두고 있는 키에르케고르를 그의 오랜 벗이었던 목사 한 사람이 찾아와 교회의 형식대로 교의 문답을 했다. 그 자리에서 키에르케고르는 교회에 의한 종교 예식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주권자시라는 것은 확실해. 그러나 후에 인간들이 나타나서 그리스도교 안에 있는 것들을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정비하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목사들이 주권자가 되는 거야.” 기존의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그것은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생각이었다. “확실히 모든 일이 개혁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서운 개혁이 될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루터의 종교 개혁 따위는 거의 농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저 구절들이 알려주듯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종교적 분위기 안에서 골치 아픈 논쟁가이자 고립된 존재였다.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 입장을 잘 알려주는 것이, 안데르센의 자전적 동화 [미운 오리새끼]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기러기]라는 우화적인 글이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는 동시대인이자 비판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재미있게도 키에르케고르의 첫 번째 책은 안데르센에 대한 혹독한 문학비평서인 [아직도 살아있는 자의 수기(1838)]이다. 어쨌든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가 오리들 틈에서 돋보이는 백조가 되는 반면, 키에르케고르의 [기러기]에선 날 수 있는 기러기가 날지 못하는 거위들을 날게 해주려고 돕다가 결국은 공상적 바보라는 비난을 거위들에게 듣는다. 이런 비난 앞에 기러기는 의기소침해져 날지 못하는 거위처럼 돼 버린다.

당대의 국교회는 거위이고 키에르케고르는 기러기라고 해야 할까? “거위는 절대 기러기가 될 수 없으나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돼 버린다. 경계하라!” 당대의 교회와 맞선 키에르케고르의 책들은 바로 거위가 되지 않으려는 저 경계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