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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옵션정보

선물옵션거래때문에 손가락을 자르다

이글 쓸까, 말까 많이도 고민했었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올바른 일이냐?"

에 대한 그 답을 이직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현재의 내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넉넉지 않았던 살림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었던 거 같다.

대학 생활과 집안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기에 항상 시간에 쫓겼고 당장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집안일밖에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 생활비를 대다 보니

무리할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그러면서도 책을 놓지를 않아서인지 정말 운 좋게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동생들 결혼도 시키고 집안도 어느 정도

안정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우연찮은 기회에 회사 후배의 손에 이끌려 증권사에 가서 재미로 주식을 입문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했기에 주식이라는 것도

몰두하고, 분석하면 상당히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게임으로 여겨졌다.



처음엔 어느 정도 수익을 내었고 그러다 보니 이것을 제대로 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계좌 금액을 늘린 것이 화근이었다. 한때는 하루 손실/수익 금액이 월 급여액과 맞먹다 보니 업무에 대한 집중이 현저히 떨어졌고 결국, 상당한 손실을 내게 되었다.



결혼 밑천이라고 생각했던 비용이 반년도 안되어 대부분 사라지자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잃고,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던 당시 천리안(인터넷 전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김 혜수(필명 따라오라)

라는 사람에게 위탁 매매를 하면 금방 불려주고 손실이 나더라도 최소 원금 50%는 보장해 준다는 달콤한 제안에 혹해 버려서...

 

 

 





선물, 옵션이 뭔지도 모르면서!!!



당시 선물계좌 등록 최소 증거금인 3000만 원...

(회사를 옮기면서 받은 퇴직금)을 믿고 맡겼으나

몇 달이 안가 계좌는 몇 만원 안 남은 계좌로 전락하고

김 혜수라는 사람은 이미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린 상태였다.

한동안 찾다가 포기를 하고 그 선물. 옵션이란 것이 뭐기에?

내게 이런 시련을 주나...

하는 의문과 그러면서 내가 선물을 직접 배워서 세상에 복수를

해 보이겠다는 이런 치기 어린 오기가 발동을 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날린 돈에 대한 허무함과 공허함 그리고 분노가 아마도

나의 이성을 날아가게 하고, 오기만 남게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않고, 대출을 받은 돈으로 선물/옵션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말 반년도 안되어 ...

(특히 금액이 줄어들면서 옵션에 손을 대면서 금액이 급속도로 줄어 갔다)

대부분의 금액을 홀라당 날렸다.



결국에는, 가족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그로부터 그 대출금을 갚느라고, 몇 년을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고, 나 자신의 십자가라 생각하고 그냥 묵묵히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났고 대출금은 겨우 갚았지만 모아둔 돈이 없는 상태에서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다시 2년을 맞벌이로 돈을 모아 원룸 오피스텔 전세를 얻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대출금을 많이 받았지만 수도권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대출금을 많이 받아서인지 월급쟁이 신분으로

그것을 갚아 나간다는 것이 녹록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파트 대출금 이외에 어머니 생활비, 처갓집 생활비까지를 모두 드리고 집사람도 임신을 하다 보니 맞벌이를 할 수가 없어

외벌이로는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결국 집사람 모르게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 투자를 했고, 그 돈이 얼마 안 남자 다시 아파트를 담보로 자금을 빌려 선물옵션 투자를 시작했고, 빚이 조금씩 늘더니 어느새



-100,000,000을 넘게 되었다.

 

 

 





정말 집요하게 공부하고 처절하게 매달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심적으로 불안하고, 눈치 보면서 업무 시간에 몰래 선물옵션 매매를 했고, 시간이 갈수록 빚은 더 불어났다.

결국, 아파트 담보대출과 신용 대출액이 아파트를 팔아 마이너스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새아기도 태어났는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정말 면목이 없었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가족들과도 약속했기에 본가에서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정말 서럽고 이게 내 운명인지...



나는 왜...

장남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고생만 하는지 서러웠다. 처가에서도 이혼을 왜 안 하냐고

계속 압박을 해왔고, 집에 가면 집사람은 맨날 우는 것을 보는 것이 당시 생활의 전부였었다.



소주를 한잔하고...

그러다 보니 한강이 보고 싶었다...

그냥 한강이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한강 대교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 같은 인생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거 같았고, 지금이라도

내가 없어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는 더 이상 안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보험금이라도 남으니...



가족을 위해 그것만이라도 남겨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퍼런 강물을 보다 뛰어들 용기가 나질 않았고

눈에는 젖먹이 녀석의 얼굴이 아른 거렸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여러 우여 곡절은 있었지만 이혼은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아기 때문에 처가에서도 한번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다시 몇 년이 지나 우연찮게 공돈이 몇백만 원 생겼다.

이 돈만 잃으면 더는 안 한다는 생각으로 옵션 매매를 다시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다시 대출을 받고 또다시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다.



정말 이번만은 선물옵션 공부를 많이 했고 충분히 시장에서 이길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더...라는 미련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던 거 같다. 아파트에서 빌라 전세로 결국은 월세로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하는 한때는 부잣집 딸이었던 집사람에게 정말 미안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회사도 결국 그만두게 되고 폐인으로 한동안 지냈다.



몸무게도 80킬로 대에서 60킬로 대로 몇 달 만에 빠졌다.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어느 날 집사람이 나에게 5백만 원의 돈을 건넸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그거 하라고 그리고 이돈마저도 잃어버리면 다시는 그거 하면 안 된다면서 ...



조용히 울었다.

그날 나도 밤새 울었다.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면서 그냥 생활비로 쓰자고 이야기할까 아니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맘 독하게 먹고 해볼까 하는 번민이 많이 괴로웠다.



정말로... 괴로웠다.



결국 더는 "찌질이"로 살지 말고 인생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에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보기로 독하게 정말 독하게 결심했다.(나중에 알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결혼 폐물들과 아기 돌 때, 어른들이 주셨던 반지들도 처분한 것을 알게 되었다)



몇 권의 선물옵션 책을 그냥 통째로 외웠고(중간중간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선물옵션 투자 스토리를 많이 읽었었다.)

중간에 투자 관련된 자격증도 취득했고 시크릿 책에 나왔던 것처럼 자기 암시를 철저히 해서인지 한 번에 절대 못 일어나는 내가...  아침 5시에는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뒷산에 가서 심호흡도 하고 마지막 도전을 할 준비를 해 나갔다.



드디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선물옵션 매매를 시작하였다.

투자액수를 철저히 분할했고 원칙을 확고하게 수립했다.

그리고, 내가 충분히 기다렸다가



"내 실력으로 먹을 수 있는"


날에만 들어가는 것으로 집중을 했다.

옵션 만기가 지나고 프리미엄이 높은 그 주간에는 다른 공부를 하면서 절대 진입하지 않았다.



프리미엄이 먹을 만큼 낮아진 만기일로부터 열흘 전에 만 진입을 노렸고 전일 미국 증시가 급등락하거나 나스닥 선물 지수가 시초부터 크게 움직이는 날 그리고, 기관/외인들이 장을 한쪽으로 크게 미는즉 장의 변동성이 제대로 확보되는 날만을 골라서 들어갔다.

(아직도 나 자신이 고물 소총 한 자루를 가진 사냥꾼에 불가하기에... 감히 "호랑이"를 잡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그냥 내가 계속 노려왔던 "사슴이나 노루"가 나타날 때만 기다렸다가 나타나면 내 사정권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과감하게 자신 있게 방아쇠를 당긴다.)

 

 

 





운이 좋았는지 욕심을 버리고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이제는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해서인지 선물옵션 승률이 80% 가까이 되었다. 주문과 동시에 로스컷도 입력했고 일 최대 3회 매매 횟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그중 2회 손실시에는 일찍 접고,

철저히 쉬면서 손실을 제한하고자 노력했다.



처음에 5백만 원이었던 금액이 몇 달 만에 금방 몇 천만 원을 넘었다. 이때가 위기였다.

주요 이론을 달달 외울 정도의 내공과 남들보다 더 자신 있게

그래프 보는 것에 너무 자만한 나머지 큰 금액을 옵션 네이키드 매수에 걸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내가 예측했던 방향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기에 버티면 매수 가격이 회복되는 경우도 다반사여서인지, 내가 정한 로스컷도 안 지키면서 버티는 경우가 잦아졌다.



어느새 잔고가 다시, 7백만 대가 되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지독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잘라냈다.

아니, 내 오만함을 잘라냈다!!!



그날 붕대를 감은 내 손을...

집사람은 붙잡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면서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하지만 내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정말 쓸모없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감는 그 순간에 정말 원 없이 그리고 정말 후회 없이, 살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의지가 다시금 흔들릴 때면 심야에 산에 가서 무덤 옆에서 한 시간씩 앉아 명상을 하면서...



절대 평상심을 찾고자 했었고, 자신과의 약속인 선물옵션 투자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날은 자신을 심하게 육체적으로 괴롭혔다.

그리고, 마음이 무뎌질 때는 언제나 한 개 부족한 내 손을 들여다보며 그날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2년이 조금 넘는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시간이 지나갔다. 내 육체는 항상 멍들어 있었지만 영혼만은 흔들림 없이 강건하고자 노력했다!!!

 

 

 




선물옵션계좌 잔고도 그사이 몇 억대로 불어났다. 어쩌면 집사람 소원인 한강이 보이는 높은 층의 주상복합아파트에 들어가 살아보는 것도 꿈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물옵션 계좌 잔고가 2억 중반 이 넘어가면서 증권과 영업담당이 전화가 왔다. 아직도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실시간 매매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자기 쪽으로 관리인을 지정해 주면 수수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로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선물옵션 투자방법을 알려달라고 찾아온 사람도 두어 명 있었다.



나는 그럴 때 그에 대한 대답 대신에 내 오른손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진심으로 말한다면, 아직 더 망가지기 전에 이 선물옵션 시장을 떠날 것을 조언 드리고 싶다.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언제 어떻게 아래로 고꾸라 질지...

아니면 지금도...

과민성 신경 대장 증세로 잦은 설사를 하는데 언제 더 내 건강이 악화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잘 버틸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다.



그래서, 아직 이 길에서 본인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여기에 진짜로 목숨 걸만한 분들이 아니라면, 절대 뒤도 보지 말고 떠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순간순간이 아직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이다. 그동안 나 자신의 계좌잔고가 조금 늘었다고 해서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해 보질 않았다.

오히려 이 길로 접어들지 않았더라면...

가졌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순탄하게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많은 것들...

(가족들의 신뢰,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즐거운 소중한 시간들을 대부분 안 잃어버렸는 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순박한 분들이 저와 같은 힘들고 거친 인생 전철을 밟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본다.



두서없고 부족한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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